런던여행, 이비스 런던 얼스코트(ibis london earls court)


런던 여행 첫 날. 그래, 내가 런던에!

입국 심사가 깐깐하기로 악명 높은 런던 히드로 공항에 도착했다. 듣던대로 입국 심사 줄은 길었고, 심사관은 까탈스러웠다. 각종 바우처를 한데 모아 만든 작은 책자를 손에 꼭 쥐고 순서를 기다리는데, 입국 심사관 한 명이 우리에게 걸어오더니 대뜸 영어를 할 줄 아냐고 물었다. 얼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한 뒤 정신을 차리고 '조금'이란 말을 덧붙였다. 무슨 일일까 조마조마하는 우리에게 그는 한국인이 영어를 못하는데 도와달라고 한다. 알고보니 우리 앞 순서의 아가씨가 깐깐한 사람에게 걸렸던 것. 패키지 여행 상품으로 와서 호텔의 이름만 알 뿐 위치는 몰랐던 그녀. 여행 스케줄표를 보여줘도 입국 심사관은 그저 호텔이 런던에 있는게 아닌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사실 별다른 해결책을 제시해 주진 못했다. 그저 한국어로 된 스케줄 표에 나와 있는 가이드와 호텔 연락처를 찾아주고 이 아가씨네 일행은 빅 그룹이라는 말만 했을 뿐. 나중에 짐 찾는 곳에서 그 아가씨를 다시 마주쳤는데, 진이 빠질대로 빠져 있었던 걸 보면 그 후로도 꽤나 고생을 했나 보다.

우리를 담당한 입국 심사관도 방금 전의 그 못지 않았다. 우리는 "런던에 왜 왔니?", "너희는 어떤 사이니?", "숙소 바우처 가지고 있니?", "다음 행선지는 어디니", "영국에서 뭐 할거니?" 질문이 참 많기도 했다. 우리는 네 개의 귀와 두 개의 입을 바쁘게 움직이며 질문에 답하고, 손에 쥐고 있던 책자를 넘겨 보여줬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책자를 휘휘 넘겨보던 그는 이내 여권을 몇 장 넘기더니 입국 도장을 쾅 찍었다. 비로소 한 달간의 유럽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 깐깐한 입국 심사 탓에 우리는 호텔을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비스 런던 얼스코트(Ibis London Earls court). 호텔은 얼스코트라는 지명이 붙은 것과 달리 실제로는 웨스트 브롬튼(West Brompton)역에 더 가까웠다. 공항에서 나와 호텔로 이동할 때는 튜브를 탔다. 오이스터 카드를 사서 탑업하고 승강장으로 내려가니 듣던대로 오래된 느낌이 가득했다. 얼스코트 역에 도착해서 웨스트브롬튼 역으로 가는 노선으로 환승했다. 마침내 역에 도착했을 때 하늘은 이미 컴컴해져 있었고, 역에는 주황색 가로등 불빛만 가득했다. 

역에서 나와 씨티맵퍼가 가리키는 쪽으로 걸었다. 역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호텔이 보였다. 생각보다 꽤 큰 느낌. 호텔을 지나쳐 5분 정도 더 걸으면 대형 슈퍼마켓과 카페, 상점이 있는 거리가 나온다. 황량한 역 주변을 보고 '뭐 이런데 호텔이 있지?'라고 생각했는데, 그 주변만 그랬나보다. 

데스크에서 대충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은 작았다. 캐리어 2개를 펼쳐 놓으면 여분의 공간이 없을 만큼 작았다. 캐리어를 이리저리 옮기며 제일 방해되지 않는 장소에 짐을 간단히 풀고 방을 다시 둘러 봤다. 작은 전기포트와 컵, 인스턴트 커피와 티백, 작은 TV와 헤어드라이어, 각종 안내문, 그리고 푹신하고 푹신한 침대. 역시 전 세계 어딜 가나 꼭 필요한 건 다 있는 글로벌 체인 호텔답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더 좋았으면 좋겠지만 지금도 불편하지는 않은 그런 정도.(좋다는 뜻이다) 아! 한가지 문제는 있었다. 에어컨이 없다는 것. 다행히 9월 첫 주 런던 날씨는 에어컨에 커버를 씌워도 될 만한 날씨였지만 여름이었다면 꽤나 고생했을 지도.

방에 비해 욕실은 또 넓었다. 무려 욕조까지 있었다. 욕실은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는데, 시설만 두고 봤을 때는 노후한 느낌이 들었다. 별다른 어메니티는 없었다. 샴푸 겸용 바디 워시와 물비누 정도. 

피곤했던 탓인지 시차 적응이랄 것도 없이 쿨쿨 잘만 잤다. 꿀잠도 그런 꿀잠이 없었을 테다. 느즈막히 일어나 창문을 열고 어제와는 사뭇 다른 풍경을 감상하며 따뜻한 차 한잔을 마셨다. 한국에서 세워온 계획은 지난밤 꿈과 함께 모두 날아가버렸다. 계획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지금 런던에 와 있는데.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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