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해서 더 정겨운 부산 닥밭골 벽화마을

부산에는 비탈진 언덕에 만들어진 벽화마을이 유독 많다. 부산에 산동네가 본격적으로 생겨난 것은 6·25 전쟁 당시 전국에서 밀려든 실향민이 부산 산 곳곳에 판잣집을 짓고 살기 시작하면서 부터다. 무허가로 시작한 달동네는 태생적으로 열악할 수 밖에 없었다. 무질서하게 지어진 집은 꼬불꼬불한 골목길을 만들어냈고, 수도나 전기 또한 열악하기 그지 없었다. 그렇게 이어져오던 달동네는 2009년 변화를 맞이한다. 정부와 시민단체가 나서서 마을을 재정비하기 시작한 것. 답벼락과 집 벽에 알록달록 색을 칠하고 그림을 그려 넣었다. 마을에서 내려다보이는 부산 앞바다는 자연이 그린 예술작품이었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벽화마을은 단숨에 인기를 끌었다. 이제는 익숙한 여행지인 감천동 문화마을이 대표적인 달동네 벽화마을이다.

하지만 다닥다닥 붙어있는 작은 집 사이로 난 좁은 골목길을 둘러보며 호젓하게 정취를 느끼기에 감천문화마을은 너무 번화하다. 골목 곳곳에 상업시설이 들어섰고, 평일이며 주말이며 할 것 없이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 부산바캉스>편의 촬영지인 닥밭골 벽화마을은 유명한 관광 스폿보다는 덜 알려진 여행지를 선호하는 사람들에게 더 어울리는 곳이다.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에 관광객이 적기 때문이다. 우후죽순 생겨난 고만고만한 벽화마을에서 느낄 수 없는 공공미술의 진수를 느낄 수 있는 것은 닥밭골 벽화마을이 품은 또다른 매력이다.

닥밭골도 부산의 여느 벽화마을처럼 한국 전쟁 즈음 생겨난 동네다. 전쟁 직후인 1953년 11월 부산역전 대화재로 터전을 잃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몰려들었던 것. 성냥갑같은 집들이 산꼭대기까지 들어찼고, 집과 집 사이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만큼 좁았다. 지금의 모습으로 마을을 재단장한 것은 2010년의 일이다. 희망근로자와 자원봉사자들이 참여한 '닥밭골 갤러리 만들기 프로젝트'는 『공공미술 도시의 지속성을 논하다』의 저자 미술작가 구본호가 주도했다. 

닥밭골에는 예로부터 한지의 원료가 되는 닥나무가 많았다. 그래서 이름도 '닥나무가 많이 나는 골'이라는 뜻의 닥밭골이다. 곱고 자그마한 다홍색 꽃이 필 때면 마을은 사랑스러움으로 가득 찬다. 골목에 들어서 마을 아이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마주하면 그 감정은 배가 된다. 나비, 꽃, 친구 얼굴‥. 정겨움 가득한 그림이 참으로 포근하다. 마을 깊숙히 들어가면 마을 어르신의 얼굴, 아이들이 노는 모습, 70년대 생활 모습과 시원한 풍경을 그린 작품이 나타난다. 마을 사람들이 지은 자작시와 김남조, 이외수 시인의 시에 그림을 더한 시화도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다. 

닥밭골 벽화마을의 하이라이트는 192개 계단에 그려진 꽃 그림이다. 끝도 없이 가파른 계단의 이름은 소망 계단. 계단을 오르내리며 계단의 갯수를 셀 때마다 그 수가 늘었다 줄었다 한다고 해서 아코디언 계단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 계단에 '소망'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계단이 생기기 전 이 장소에는 영험한 힘을 지닌 동자바위가 있었는데, 이 바위에 소원을 빌면 반드시 이뤄졌단다. 소원을 이뤄주는 바위 자리에 만들어진 계단인만큼 이후에도 사람들은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하며 소원을 빌었다고. 지금도 소망 계단 앞에는 계단을 오르며 소원을 빌어보라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한 계단씩 오르는 것은 생각보다 재미있다. 까마득한 높이에 끝까지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추억을 되새기며 계단 중턱 까지만이라도 올라보는 것은 어떨까?

■ 닥밭골 문화 나눔터

마을 입구에 위치한 폐가를 활용해 만든 북카페. 바리스타 교육을 마친 주민들이 직접 내려주는 커피를 마실 수도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도 있다. 마을에서 유일하게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찾아가는 길

지하철 1호선 동대신역에서 내려 5번 출구로 나가면 닥밭골 가는 길 이정표가 나타난다. 버스로는 부산역에서 70번이나 135번 버스를 타고 동대신2동에 내려 200m 정도 걸으면 된다. 마을 입구에는 유료주차장도 있다. 주차비는 10분당 100원.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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