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성곽 데이트, 야경이 아름다운 도심트래킹코스

몇 해 전 '서울성곽길 스탬프투어'가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어릴적 인왕산 아래 동네에 살면서 경복궁 옆의 학교를 다녔던 내게 '성곽'은 참 익숙한 것이어서, 그것이 '특별하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그 성곽을 두고 관광코스를 개발했다니 참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걷기'를 싫어하는 내게 성곽길을 걷는 것은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어서, 실제로 그 길을 걸은 것은 그로부터 또 얼마의 시간이 지나서였다. 
내가 서울성곽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몇 해 사이에 서울성곽에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째로 '한양도성'이라는 본래의 이름을 찾았고, 둘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으며, 셋째로 대부분의 성곽이 복원되었다는 것이다. 한양도성은 낙산, 북악산, 남산, 인왕산 이렇게 4개의 코스로 되어있다. 총 길이는 약 18km로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다 돌아볼 수 있는 길이지만 체력의 문제도 있고, 각각의 성곽길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볼거리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한 코스만 먼저 걸어보기로 했다.(무엇보다 이 성곽길을 걷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이색 데이트'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더 컸기 때문 이기도 하고..^^)

한양도성 성곽길 중 이번에 걸어본 길은 숭례문부터 광희문까지 이어지는 <남산성곽>이다. 남산성곽은 숭례문부터 N서울타워, 국립극장 등을 지나기 때문에 볼거리가 풍부하고 다른 코스들에 비해 비교적 완만한 편이기 때문에 걷기에도 부담스럽지 않은 코스다. 특히 코스 중간에 N서울타워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더할나위 없이 좋다는 것!
N서울타워에서 노을을 보고 내려오며 펼쳐지는 서울의 야경을 볼 생각으로 낮 3시경 장충체육관에서 출발해서 걷기 시작했는데 이렇게 걸을 경우 N서울타워를 넘어 숭례문 방향으로 걷는 길목에 있는 안중근의사 기념관을 둘러볼 수 없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제대로 된 남산성곽 트레킹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광희문에서 시작해야 했지만, 광희문 부근의 성곽은 유실된 구간이 많아 좀처럼 바른 길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복원된 성곽길 시작 지점에서 출발했다. 출발점은 동대입구역 5번 출구로 나와 직진 하다가 나오는 첫번째 횡단보도 옆 길로 올라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성곽길이 시작되는 지점에는 위의 사진처럼 한양도성 서울성곽에 대한 설명과 코스 안내 지도가 있다.


하늘이 푸르고 햇살이 강하지 않은 날을 택해 트래킹을 했더니 카메라로 어딜 찍어도 운치 있다. 한쪽으로는 도심이, 다른쪽에는 자연과 어우러진 성곽이 펼쳐진 탐방로를 걷는 것은 예상했던 것 보다 색다르고 로맨틱한 기분이다. 오솔길처럼 나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걸으며 사진을 찍고, 가끔 뒤를 돌아 걸어온 길을 내려다 보면 주변의 마을과 도심이 한 눈에 내려다보인다. 

어릴적 내가 그랬던 것 처럼 이곳에 사시는 분들에게도 한양도성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이리라. 동네 어르신들이 성곽길 옆의 쉼터에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마치 나 어릴적 동네 어르신들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이화마을, 북촌, 서촌 등 성곽 주변의 특색있고 정감어린 마을들이 몰려드는 관광객의 등쌀에 그 본연의 색을 잃어버리고 마을 주민들의 불편 또한 너무나도 크다고 한다. 서촌과 북촌에서 어린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나도 요즘의 그곳에서 느껴지는 이질감에 몸서리 쳐질 정도인데 평생 뿌리를 내리고 산 토박이들이라면 그 불편과 불만이 얼마나 클까!

한양도성은 옛 한양을 둘러싸고 있는 성곽이기에 그 주변에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한양도성이 관광코스로 개발되고 있다지만 그것은 그 주변의 마을, 삶과 어우러지고 공존할 수 있을 때 매력이 빛을 발한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그곳의 주민이 아니라 관광객의 입장으로 마을을 접한 성곽길을 걷는다면 너무 소란스럽지 않게, 마을을 훼손하지 않게, 최대한 피해가 가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 예의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한양도성주간 관련한 글을 쓰며 한양성곽에 대한 공부를 좀 하고 갔더니 같이 걷는 허비에게 이것저것 설명을 해줄 수 있어 좋았다. 성곽길은 아름답게 조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사실 '걷기'자체는 지루해지기 쉬운 것이기에 성곽길 걷기 데이트를 하려는 사람이라면 둘 중 한명은 간단히라도 정보를 찾아서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를들어 한양도성 성곽은 쌓은 시기에 따라 돌의 모양이 다르다거나, 돌에 글자가 새겨져 있는 것은 축조를 맡은 담당자를 표시하는 것으로 그 시대의 공사실명제 같은 것이라는 것 정도?

성곽길 바깥을 걷던 중, 성곽 안쪽으로 들어가 걸으면 경치가 좋다는 동네 아주머니의 말씀에 성곽 안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굴을 통해 성곽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 동네 주민분의 말씀을 듣는 것 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역시 성곽 안쪽으로 들어오니 도심이 시원하게 눈 앞에 펼쳐졌다. 잔디와 나무가 많아 숲 속을 걷는 것 같기도 하고..^^

길을 따라 걷다보니 팔각정이 나오고 이어 성곽이 끊긴 구간이 나타난다. 반얀트리 호텔부터 남산 산책로 입구쪽 까지는 성곽이 유실된 구간으로 ,이 지역은 사유지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할 수 없고 저녁 시간대에는 탐방이 통제되어 다른 쪽으로 우회해야 한다. 또 성곽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알아보기 쉽게 되어있지 않기 때문에 이곳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위의 사진에 있는 동그란 표식을 따라 가면 좋다)

반얀트리 호텔을 지나 유실구간을 걸어 내려오면 국립극장에 다다른다. 해오름극장 옆쪽으로 난 도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가 나오는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걸어 올라가고(이정표 있음), 중간에 길 옆쪽으로 나무계단이 난 쪽으로 올라가면 다시 성곽 탐방로로 이어진다. 
 국립극장
1950년 아시아 최초로 설립된 극장으로 다양한 예술작품을 공연하고 있는 한국 공연예술의 자부심이다. 모든 장르의 공연히 가능한 해오름극장, 국립예술단체의 상설공연이 열리는 달오름극장, 별오름극장 등의 시설이 있으며 5월부터 9월 매주 토요일에 열리는 '토요문화광장'은 15년 이상 이어져온 국립극장의 최장수 야외 프로그램이다. 
-홈페이지: http://www.ntok.go.kr/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장충단로 59(장충동2가) -전화: 02)2280-4114

성곽을 따라 남산을 오르는 성곽탐방로.. 푸르른 숲 속을 걸을 수 있는 성곽탐방로에서는 많은 꽃과 나무, 성곽을 타고 자라나는 담쟁이 넝쿨과 경쾌한 새소리를 들으며 걷는 소소한 재미가 있다. 길 옆쪽을 따라 흐르는 성곽의 돌은 크기가 제멋대로인 자연석이다. 이렇게 자연석을 사용해서 쌓아올린 성곽은 태조때 쌓은 성곽으로 성곽 중 가장 오랜 시간 이 자리를 지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윗부분은 돌과 페인트를 사용해서 복원했으니 박정희 대통령 시절 복원했을 것이라 짐작해본다.

계단을 모두 오른 뒤에는 숲 사이에 난 산책로를 따라 내리막이 이어진다. 길 앞쪽으로는 나무 사이로 N서울타워가 가까이 보인다. 오후 5시 조금 전.. 장충체육관에서 출발한지 1시간 30분 정도만에 도착했고, 성곽탐방로는 계단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평소에 체력관리를 하지 않았다면 조금 힘이들 수 도 있다. 

N서울타워에 도착.. N서울타워는 남산의 상징이자 서울의 대표적인 전망대로 동양방송, 문화방송, 동아방송국이 공동으로 투자해서 1975년 종합전파탑과 함께 전망대로 탄생했고, 1981년 일반에게 공개되면서 서울의 랜드마크로 자리잡은 곳이다. 이곳에 오르면 서울의 전역에 펼쳐지고 맑은 날에는 멀리 개성 송악산과 인천항까지도 보인다고 한다. 
 N서울타워
-홈페이지: http://www.nseoultower.com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용산동 2가 1-3
-전화: 02)3455-9277
-전망대 이용시간: 10:00~23:00 (토요일 ~24:00)
-전망대 입장료: 어른 9천원, 청소년 7천원, 어린이 5천원

N서울타워는 연인들의 로맨틱한 데이트코스로도 유명한 곳인데, 특히 N서울타워 루프테라스는 많은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며 매달아둔 각양각색의 자물쇠들이 매달려 있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노을이 참 아름답다. 또 전망대에서는 360 파노라마뷰로 서울의 전체 모습을 볼 수 있고, 서울의 멋진 야경과 함께 맛있는 식사를 즐길 수 있는 레스토랑과 카페도 있다.

이곳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분위기를 내는 것도 좋겠지만, 그건 다음번에 즐기기로 하고 이번에는 남산 팔각정에 잠시 앉아 쉬다가 루프테라스에서 노을을 보고 다시 성곽길을 따라 내려가기로 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한양도성 성곽길 데이트.. 길 중간 중간 매력적인 장소들이 너무 많아 마음을 빼앗기기 일수라 완주하기 참 힘들다^^.

N서울타워 루프테라스에서 보는 해질녘 노을..주름이 조금 있어 아주 붉게 타오르는 모습은 아니었지만 서울 시가지와 한강 위로 떨어지는 노을이 참 아름답고 로맨틱하다. 역시 서울에서 손꼽히는 노을 명소 답다고 할까?^^

노을을 보고난 뒤 남산 봉수대 옆쪽의 길을 따라 남산을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 옆쪽으로 나지막한 성곽이 따라 흐르고 있고, 길을 걷다 뒤를 돌면 성곽과 N서울타워를 배경으로 멋진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계속 길을 따라 내려가면 남산 야경의 백미인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로 갈 수 있다. 

잠두봉전망대는 남산에 있는 세개의 전망대(남측포토아일랜드, 잠두봉전망대, 팔각정 한남동조망소) 중 하나로 과거 한양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는 내사산(백악, 낙산, 목멱, 인왕)을 볼 수 있고 고궁과 성곽의 모습까지 한 눈에 그려 볼 수 있는 조망대이다. 낮에 이곳에 올라 시원하게 펼쳐진 서울의 전경을 즐기는 것도 좋지만, 잠두봉 전망대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해질녘부터 해가진 뒤의 시간을 택하는 것이 좋다. 화려하게 불을 밝힌 수도 서울의 아름다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

잠두봉 전망대에서 내려가면 안중근의사 기념관이 나오고, 기념관을 지나면 백범광장에 도착한다. 백범광장부터 힐튼호텔까지는 다시 성곽이 복원되어 있는데, 화려한 호텔 건물 사이로 은은한 조명이 밝혀진 성곽이 자리한 모습이 꽤나 그럴싸하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 나와 유명해진 '삼순이 계단'이 이 백범광장 근처에 있으니 시간이 되면 한번쯤 가봐도 좋겠다.
 안중근의사 기념관
1909년 10월 만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살해한 독립운동가 안중근 의사를 기리기 위한 기념관이다. 기념관은 전시실과 안중근의사 광장으로 이루어져있으며, 실내전시실은 안중근의사의 일대기, 의거, 재판과정 등을 다룬 영상물과 옥중생활과 활약상을 다룬 슈퍼그래픽,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
- 홈페이지: www.patriot.or.kr
-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471-2 소월로 91
- 전화: 02)3789-1016
- 이용시간: 평일 10:00~18:00(동절기 17:00)
- 관람료: 무료
■ 백범광장
남산공원을 올라가는 산 중턱에 위치한 광장으로, 원래는 이승만대통령의 동상이 있던 곳이었으나 4.19혁명 이후 이승만 대통령의 동상을 철거하고 1968년 8월 백범광장을 조성하고, 김구 선생의 동상이 세워졌다. 동상 앞으로 넓은 잔디밭이 조성되어 있다.

백범광장이 있는 남산공원을 내려온 뒤 숭례문까지는 다시 성곽이 유실된 구간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방화로 인해 소실되었던 숭례문이 복원되어 4대문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것.. 최근 숭례문 복원이 날림으로 되었다는 잡음이 다시 들리긴 하지만 일단은 존재한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한 것이 숭례문이 아닐까 싶다.

숭례문으로 향하는 길.. 유난히 환한 도로가 눈에 띈다. 순간 이곳이 우리나라, 서울이 아니라 여느 유명 도시의 골목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항상 가까이에 있는 것은 그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놓치고 사는 것 같다. '서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이었지..!'라고 새삼 느낄만큼.

양 옆의 성곽과 함께 복원된 숭례문. 새로 복원된 성곽의 돌들이 너무 새것 느낌이라 이질감이 많이 들지만 세월이 흐르고나면 저것도 자연스럽게 때가 타고,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자연스럽게 느껴지겠지! 사실 숭례문도 방화 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그저 '이정표'정도의 느낌이었을 뿐 소중하다거나 아름답다거나 하는 생각을 따로 해 본 적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명동을 가는 길에 숭례문이 보이면 이제 내릴 때가 되었구나.. 싶고, 멀리 놀러갔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차창 밖으로 숭례문이 보이면 이제 집에 거의 다 왔구나.. 하는 정도? 항상 그 자리에만 있을 것 같던 이 문이 사라졌다 돌아오니 이제서야 아름다움이 보인다. 서울의 8문 중 가장 크고 화려한 정문인 숭례문. 시간이 늦어 안에까지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참 아름답고 아름답다 :)

 숭례문

우리나라 국보 1호이자 한양도성의 4대문, 4소문 중 가장 규모가 큰 정문이다. 당시 한양 사람들에게는 자부심의 대상이었고 지방 사람들에게는 한 번 보고 가면 큰 자랑거리가 되는 문이었다. 임진왜란, 한국전쟁을 비롯한 난리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보전되어 오다 일제 때 문의 양 끝으로 이어진 성곽이 허물어지고 도로가 놓이면서 문으로써의 역할을 마감하게 된다. 이후 섬처럼 떠있던 숭례문은 2005년 숭례문 앞 광장에 공원을 조성해 누구나 드나들 수 있게 되었지만 2008년 화재를 당해 문루가 전소되는 사고를 겪었다. 이후 5년간의 복구공사 이후 2013년 5월 복구 기념식과 함께 다시 개방되었다.

-홈페이지: 중구 문화관광

-주소: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4가 29

-관람시간: 09:00~18:00(월요일 제외)

영화보고 차마시는 데이트는 식상해서 싫고
그렇다고 어디 멀리 놀러 나가기에는 부담스러운 주말,

편한 운동화에 청바지, 배낭에 물 한병
한 손에는 카메라 한 손에는 사랑스러운 연인의 손을 꼭 잡고
옛 서울을 둘러싸고 있는 한양도성 성곽길을 걸어보는건 어떨까?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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