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알고싶은 중국, 복건 영정 토루 샤먼여행



샤먼에 도착한지 3일차 아침, 바로 샤먼 여행을 결정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던 '토루(土楼)'에 가는 날이다. 우리나라에 토루는 <카인과 아벨>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대중들에게 알려졌다. 내가 토루를 알게된 것은 그보다 더 오래 전이다. 영정토루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올케언니가 우연히.. 중국 서점에서 파는 내국인용 관광책자에서 보고, 거의 이틀 가까운 시간을 기차와 버스를 타고 다녀왔다고. 여행을 좋아하는 올케언니 덕분에 견문이 넓어지고 있다. 웬만한 한국인이 잘 모르던 시절에 토루를 다녀올 수 있었으니 말이다.  


토루.. 토루는 샤먼에서도 차로 2~3시간을 달려야 만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꾸준히 개발이 되고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워낙 후미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개별적으로 가기가 쉽지 않다. 하루를 투자하면 영정도루, 남정토루,운수요 등등 여러 곳을 여유롭게 볼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나에게는 오늘이 마지막 날.. 토루와 일월곡온천을 모두 다녀오기 위해서는 개별여행은 불가능한 일로 느껴졌다.(나중에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래서 샤먼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이 그렇듯이 나도 단체관광에 참여하기로 했다. 타오바오를 통해 가격대를 검색하다보니 영정토루+일월곡온천이 모든 입장료 포함해서 270원에 올라온 것을 찾았다. 샤먼지역의 물가를 몰랐던데다가 토루-일월곡온천-샤먼으로 돌아오는 일정도 꽤 괜찮은 것 같아서 예약을 했다. (포스팅을 하며 자세한 이유는 설명하겠지만,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고 타오바오 여행사에서 토루여행패키지를 예약하려고 한다면 말리고싶다!


아침 7시, 내가 묵고있는 중산로의 숙소 앞으로 운전기사가 픽업을 왔다. 작은 봉고차, 기분이 쎄하지만 안에 나처럼 순진(?)해보이는 중국 여행객들이 보여서 일단 타기로 했다. 어린 딸과 엄마, 커플, 여자친구두명, 아저씨하나, 여자애 하나, 그리고 나... 이렇게 9명을 태운 차는 토루를 향해 출발했다. 약 1시간정도를 달린 뒤, 내리라는 소리에 번호가 적힌 명찰을 목에 걸고 차에서 나와보니 죽염 제품을 파는 이상한 건물 앞에 와있다. 이게 바로 영세여행사 또는 사짜..에서 반드시 끼어있다는 그런 쇼핑인가? 심지어 광고판에는 한국어로 "죽염'이라는 글자도 써있다. 책상과 제품들이 있는 이상한 방에 앉아있으니 약장수같은 여자가 들어와서 죽염제품, 100%순면이라하면서 물건을 판다. 보다보니 나름 재미있어서 9명이 킥킥대며 구경을 하고 나왔다.


결국 12시가 다 된 시간에 영정토루 근처 식당에 내렸다.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줄 알았다면 개별 여행을 올 것을.. 첫번째 후회가 시작된 순간이다. 이상한 천막같은 것이 쳐져있는 곳에 테이블들이 놓여져있고, 5종류 정도의 음식들과 밥이 나온다. 떡같은 밥과 짜고 느끼하고 묘한 맛의 요리들..사람은 같은 것을 공유하면 친해진다고 했던가? 이 난해한 요리를 먹다보니 같은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서로 말이 없던 9명이 "진짜 맛 없다!"라는 말과 함께 어색함을 터놓기 시작했다. ※객가음식의 특징이 짜고 기름진맛이라고 한다.




약 30분간의 식사를 마치고 영정토루 입구로 이동했다. 으리으리하게 지어진 매표소 앞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운전기사가 입장권을 나눠준다. 개별적으로 방문하면 입장권을 50원에 구입할 수 있다고 한다. 약 2시간정도 관람을 하고 난 뒤 주차장에서 모이는 것으로 운전기사와 정한 뒤, 티켓팅을 하고 들어갔다. 걸음을 옮기며 버스를 같이 타고온 여자아이들과 얘기 나누다 보니 나이대가 비슷비슷...한줄 알았는데 내가 1~2살정도 많은 편이었다. 


계단을 올라가니 국가AAAAA관광지라는 표지가 서있다. 구랑위에 이어 이번 샤먼여행에서 AAAAA급 관광지를 2개째 보는거다. 영정토루에 소속된 가이드 1명을 따라서 길을 걷다보니 길 양 옆으로 기념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늘어서있다. 사실 가게라기엔 너무나도 허름한 모습.. 노점과 가게의 중간정도 되는 느낌이랄까.. 깔끔하게 정돈된 느낌의 매표소와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다.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잘 정돈되어 있겠지.



▲ 영정토루에서 가장 크고 유명한 토루인 승계루(承启楼)



약 천여년 전 화북지방의 전란을 피해 남하한 한족이 광둥성, 복건성 등지의 산기슭에 정착한 뒤, 객가인.. 즉 “초대받지 않은 客(객,손님)”으로 불리우며 현지인의 공격을 방어하기위해 요새와도 같은 집을 지은 것이 바로 토루인데 그 후 워낙 외딴 곳에서 폐쇄적인 생활을 했기에 중국 내에서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고 한다. 레이건 대통령 시절 미국이 중국을 정찰하던 중, 영정토루를 핵시설로 오인해서 비밀요원을 급파해 직접 확인하면서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되고, 2008년 만장일치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에 이른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선정에 찬성한 것은 이 토루가 역사적/건축학적 가치가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단순히 시간 속에 박제된 '유적'에 그치지 않고 객가인들에 의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역사의 현장이기 때문이다.




복건토루는 송대에 처음 나타난 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대형 민가 건물인데, 큰 외벽 안에 겹겹이 쌓여있는 구조로 되어있다. 지금도 토루 안에는 객가인들이 1층에서 기념품을 팔고 윗 층에서 거주하기 때문에 밥을 짓고, 빨래를 하는 모습을 쉽게 만날 수 있다.





▲토루가 그려진 유화..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 옛날 토루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마을, 나라 속의 나라로 갓 시집온 새색시가 토루 안의 사람들을 다 익히는데 1년이 넘게 걸리기도 했다고 한다. 그렇게 수 세기를 살아오는 동안 하나의 토루는 한 부족, 한 가문이 공동으로 거주하는 곳이 되었고 토루 중심부에는 조상님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 있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첫번째 층은 교육이 이루어지던 장소로, 그 옛날에는 교육도 외부에 나가지 않고 토루 내부에서 이루어졌기에 토루의 생활 습관인 협력-근검-절약의 정신은 물론, 조상들의 지혜와 수준높은 지식이 집중적으로 교육되어 대대로 걸출한 인물들을 여럿 배출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중국 경제개역개방의 주역인 덩샤오핑, 전 싱가폴 총리 이광요와 같은 인물이 있다.


▲ 흙과 돌로 쌓아 높게 올려진 토루.. 몇 세기를 버텨온 힘이 느껴지는 것만 같다.







승계루를 나와서 옆에 있는 작은 토루에 들어갔다. 관광지의 느낌이 강했던 승계루에 비해 한산한 느낌이다. 토루 역시 겹겹이 쌓여있는 형태가 아니고 외벽만 존재하는 모습이었고, 우물을 비롯해서 사람냄새가 많이 느껴지는 모습..

토루는 하나의 마을과도 같기 때문에 이 토루 안에서 가축도 키우고, 사람도 살고, 공부도하고, 살림도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토루 안의 공동 우물을 모든 객가인이 함께 이용했기 때문에 우물에 독이 타져있으면 객가인 모두가 해를 입을 수 있는 형태였다고 한다. 그래서 예전에는 공동 우물에 잉어를 풀어 키우며 우물에 독이 있는가 여부를 체크했다고 한다. 물론 지금은 세상이 좋아져 수도꼭지가 설치되어 우물은 더이상 사용하지 않는다.

▲ 토루 안에서 찻잎을 말리는 모습..

▲ 토루 윗 층에는 올라가는 것이 금지되었다고 거짓말을 했던 가이드. 귀찮으면 귀찮다고 말할것이지..


토루 윗층의 모습이 궁금해서 위에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래서 가이드에게 올라갈 수 있냐고 물었더니 예전엔 가능했는데 지금은 금지되었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이 들었지만 하지말라는 것을 억지로 할 만큼 개념이 탈출한 사람이 아니기에 1층에서만 구경을 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보니 단체 투어할 때는 올라갈 수 없지만 자유롭게 구경할 때는 올라가볼 수 있다고 한다.


▲ 개도 힘들고 나도 힘들고..


아침엔 조금 선선했던 날씨가 어느새 햇빛이 쨍쨍 내리쬐는 날씨로 바뀌었고, 나에게도 약 1시간 정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지금까지 구경한 2개의 토루와는 다른 네모 모양의 토루 앞에 도착했다. 영정토루촌에서 가장 오래된 축에 속한다는데, 이 때부터 문제가 시작되었다. 바로 아까 먹은 점심이 잘못되었는지 미칠듯한 속쓰림이 시작된 것..나는 평소에 위장이 굉장히 약한편이라 위장약을 꼭 챙겨다녔었는데, 아침에 급히 나오느라 약을 챙겨 나오지 않아서 그저 참는 것 밖에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속쓰림을 참으며 같이 여행 하며 친해지게 된 중국 아가씨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아픈게 좀 잦아드나 싶더니 이내 다시 식은땀이 삐질삐질.. 화장실을 가도 해결되지 않고(ㅋㅋ) 얼굴은 창백해지고 하늘은 노랗고.. 같이 여행을 다닌 내 또래 아가씨들과 함께 전망대에도 올라가고 영정토루 구경도 좀 하고싶었는데, 도저히 걸어다닐 정신이 아니었다. 결국 나는 전망대에 가지 않고 쉬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만 전망대에 올라가는데, 서러움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 곳을 올 생각에 얼마나 기쁘고 설렜었는지.. 살면서 두번 다시 못올 수도 있는 이 곳에서, 왜 하필 지금 이렇게 아픈건지..눈물 쏙 빼면서 30분정도 쉬고나니 속은 좀 괜찮아졌지만, 주어진 시간이 거의 남지 않았다. 뭔가를 구경하기엔 속이 불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기엔 아쉬움이 너무 컸다.



터덜터덜 주차장을 향해 돌아가다가 게이트에 거의 다다랐을때쯤, 이렇게 돌아가면 너무너무 아쉬울 것만 같았다. 그래! 여기에 오기 전부터 꼭 사고싶던 영정토루 모형이 들어간 스노우볼이라도 사야 직성이 풀리겠다! 이런 묘한(=쓸데없는ㅋㅋ)오기로 진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배를 쥐어잡고 승계루로 향했다. 경보하듯 걸으며 기념품을 파는 가게들을 스캔.. 내가 갖고싶은 바로 그 모양을 파는 곳이 없어서 진짜 슬퍼지려던차에 딱 하나가 눈에 띄었다! 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보니 1개에 30원을 달라고 한다. 아.. 지금 컨디션 완전 꽝인데.. 꽝인데.. 흥정하기 귀찮은데.. 짜증나는데.. 그래도 도저히 저 돈 주고는 못사겠다ㅜㅜ

값을 조금 깎다가, 수량이 2개가 되는지를 물었다. 올케언니도 스노우볼을 팔면 하나 사다달라고 했었던 것이 생각났기에. 주인아저씨는 재고가 없는지 찬장 같은 곳을 한참 찾다가 결국 내가 사고픈 사이즈의 스노우볼을 그 하나뿐이라고 대답했다. '한국에서 왔는데, 진짜 난 이걸 꼭 사야 한다! 이걸 사기위해 여러 토루들을 뺑뺑 돌았다, 제발 좀 구해달라'라는 말을 하며 열심히 졸랐더니 주인아저씨가 전화를 해서 누군가에게 물건을 좀 가져달라고 했고, 나에게는 앉아서 좀 기다리라고 말을 했다.


조금 경계를 풀고 얘기를 하다보니 주인아저씨에게서 참 친절하고 따뜻한 느낌이 풍긴다. 살짝 물어보니 윗층에 살고있는 객가인이라고 한다. 속이 불편하다고 하니 따뜻한 차를 마시면 좀 나을거라고.. 이곳에서 재배되었다는 차를 끓여준다. 차에 대해 잘 모르기에 좋은 차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파는 것 아니고 아저씨만 드시는 차라고 하니까 좋은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차를 마시며 얘기를 하다보니 속이 좀 진정되는 기분이어서 고맙다고 말을 했다. 생각보다 물건이 오는 시간이 길어져서 아저씨와 대화를 나눌 주제가 점차 떨어지던차..(내 중국어가 바닥을 보일 즈음..) 이 곳의 특산음식이라며 포장되어있는 것을 하나 꺼내어 보여줬다. '음.. 뭐지? 나한테 뭔가를 팔려고 하는건가..?'라고 다시 경계를 하려고 했는데, 아저씨가 꺼낸 것은 바로 포장된 곶감이었다 ㅠㅠ "이거 우리 한국에도 있는거예요(속뜻:안사요)" 라고 말을 하니 신기해 한다.

특산 음식이니 하나 먹어보라면서 포장을 바로 뜯어서 아저씨가 하나 먼저 물고 나한테도 하나 줬다. 이걸 먹을까 말까.. 또 배가 아프면 어쩌지?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아저씨가 하나를 다 드시고 나한테 또 하나를 주신다. '가져가서 먹게 좀 싸주시면 안될까요?'라고 하는건 실례겠지? 일단 먹었는데... 맛도 있고 속도 안 불편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스노우볼이 커다란 봉지에 수십개가 담겨져 왔다. 신난다♪ 돈을 드리기 전, 마지막으로 두 개 사니까 값을 더 깎아달라고 필살 애교를 부려본다. 아저씨.. 한숨을 푹푹 쉬며 "这个小东西。。"라고 고민을 하다가 알겠다고 승낙을 해주셔서 스노우볼 2개를 30원에 샀다. 신나는 마음으로 아저씨와 셀카를 찍고 부랴부랴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전망대에 올라갔던 아가씨 일행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 같이 버스를 타고왔던 아저씨 관광객 한 분만 차에 타고 계셨다. 이 아저씨는 하얼빈에서 혼자 여행을 왔다고 하는데, 내가 하얼빈에서 어학연수를 했다고 하니 (조금)반가운 내색을 보여주셨다. 난 굉장히 반가웠는데. 샤먼 여행 얘기도 좀 하고 그러다가 아저씨가 한국 아가씨 사진 한 장 찍어가겠다고 해서 사진도 한 장 찍었다. 물론 나도 찍히고만 있을 수는 없기에 하얼빈 아저씨랑 셀카를 한 장 남겼다. 아저씨는 이렇게 셀카찍은게 처음이라고 한다 ㅜㅜ 아저씨..ㅜㅜ



2시 30분쯤.. 모든 인원들이 봉고에 다시 모였고, 각자 영정토루에서 사온 간식거리들을 다같이 나누어 먹으며 다시 샤먼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나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샤먼으로 돌아가고, 나는 일월곡온천으로 가는 일정이다. 오늘의 불운이 영정토루에서 배탈난 것으로 끝나는 줄 알았는데, 나의 불운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일월곡온천으로 가는 길.. 더 큰 시련이 나에게 찾아오고 있었다.



2012.2.28~2012.3.2

北仑-厦门-鼓浪屿-永定土楼-日月谷温泉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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