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여행, 진짜 초원에서의 하룻밤

내가 고조선쯤에 태어났으면 기우제 제물로 바쳐졌을 지도 모르겠다. 어쩜 이렇게 가는 곳마다 비가 내리는지. 처음으로 '초원'을 보기 위해 중국 내몽고에 갔을 때도 날이 흐렸다. 내내 맑다가 그날따라, 하필 그날 비가 내리는 바람에 그 아름답다는 초원의 밤을 느끼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번에도 나는 비를 피하지 못했다. 테를즈국립공원에 가까워질수록 날씨가 흐려졌고, 종종 빗방울까지 떨어졌다. '초원에 쏟아지는 별' 같은건 내 인생에 허락되지 않는 건가보다. 

캠핑을 하기 위해 찾아간 테를즈 국립공원은 천혜의 자연이 장관인 곳으로 전 세계 여행자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초원에서의 특별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는 테를즈국립공원의 게르캠핑은 외국인들에게 인기가 특히 많다고 한다. 테를즈국립공원 주변에는 몽골 전통가옥인 게르를 이용해서 마련된 여행자 숙소가 곳곳에 있는데, 여행자 숙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열악한 시설의 전통 게르라기 보다는 캠핑장처럼 개량된 숙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전기도 들어오고 공동으로 마련된 화장실과 편의시설까지 있는 캠핑장. 숙박비는 하루에 한화 2만원정도인데 큰 사이즈의 게르에는 최대 4명까지 잘 수 있다고 한다. 우리가 간 곳은 17호 게르까지 있는 꽤 큰 캠핑장이었다.

캠핑장의 게르는 전통게르와는 달리 가운데 난로가 있고 나무로 만든 침대만 들어있는 신식게르였다. 게르 안은 춥지도 따뜻하지도 않아서 참 아늑했다. '몽골'스러운 느낌이 드는 담요와 게르 안쪽을 감싸고 있는 푸른색 천에 그려진 무늬들이 이국적인 느낌을 더해다. 

그런데 나의 불행은 비가 끝이 아니었다. 밤이 깊어질 수록 게르 안으로 점점 많은 수의 벌레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하나.. 둘... 열....스물... 셀 수 없이 많은 딱정벌레들이 벽을 기어올르고 천장을 지나가다가 뚝뚝 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톡..톡.. 빗방울처럼 떨어지는 딱정벌레를 피해 게르를 탈출한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밖으로 나가보이 아이들이 사색이 된 표정 담요를 둘둘 말고 있었다. 

당황,공포,해탈의 과정을 넘기고 장작을 하나 들어 게르를 툭툭 치며 딱정벌레를 바닥으로 떨어뜨리며 어떻게든 게르에서 잠을 자려고 했지만 밀려오는 딱정벌레떼들을 감당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몽골에 오게 된 순간부터 꿈꿨던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초원의 밤'은 딱정벌레와 함께하는 충격과 공포의 밤으로 변해버렸고, 벌레를 내보내기 위해 조흐(전통 난로)에 장작불을 피운 뒤 게르 밖으로 몸을 피했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살짝 게르 문을 열어보니 후끈한 열기에 딱정벌레들이 모두 도망갔는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불안하긴 했지만 너무 피곤해서 일단 침대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결에 다른 사람들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고 난로에 불이 꺼졌는지 게르 안의 온도가 조금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다 갑자기 얼굴이 간질간질.. 손으로 툭 치니 딱정벌레 한 마리가 나가 떨어졌다. 모른척 다시 잠을 자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머리카락 위로 딱정벌레 한마리가 툭 떨어졌다.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끼쳐서 배낭에 모든 짐을 챙긴 뒤 담요 하나를 들고 게르 밖으로 다시 피난을 나갔다. 벌레때문에 게르에 들어가지 못하고 담요를 쓰고 밖을 배회하던 아이들이 나를 보고는 "선생님도 나왔다!!"며 좋아했다. 그래 너희나 나나 같은 마음이구나.

결국 게르 밖에서 밤을 샜다. 밝아오는 하늘과 함께 딱정벌레도 하나 둘 사라졌다. 게르 안에서 그냥 잠든 일행들의 상태가 궁금해 문을 살짝 열어보니 세상에 얼굴이며 몸이며 딱정벌레들이 기어다니지 않는 곳이 없었다. 딱정벌레가 기어다니는지도 모르고 평화롭게 자는 사람들을 깨울 수도 없어서 그냥 다시 문을 닫아놓고 나왔다. 밤새 게르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 곳에서 키우는 개들과도 친해졌다. 집에 두고 온 우리 강아지들도 생각나고.. 봉사단 아이 중 한명은 개 한마리에게 '뭉치'라는 이름까지 붙여줬다.

딱정벌레와 함께한 공포의 밤은 그렇다 치고, 새벽의 테를즈 국립공원은 정말 멋있었다. 푸른 초원과 멋진 바위병풍, 곳곳에 보이는 동그랗고 작은 게르들.. 평화롭고 신비로운 느낌이 가득한 몽골 초원의 새벽. 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감격스러운 풍경이었다. 맞은편에에도 게르캠핑장이 있었다. 우리가 있는 곳 보다 조금 작은 규모였는데, '캠핑장'이나 '펜션촌'같은 느낌이 드는 우리 숙소보다 조금 더 자연에 가까운 느낌이라 좋아보였다.

캠핑장에서는 일정 금액을 내면 아침식사를 제공해줬다. 간밤에 숙면을 취했더라면 정말 맛있고 행복하게 먹었을 서양식 아침식사.. 지끈거리는 머리와 메슥거리는 속이었지만 이것까지 먹지 않으면 정말 너무 손해보는 기분이 들어 립톤홍차 한 잔과 버터를 잔뜩 바른 빵, 계란과소세지를 먹었다.

테를즈국립공원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는 나의 바람과는 달리 이곳에서 해야하는 문화체험 프로그램이 많이 남아있었다. 힘들게 온 곳이니 예정된 구경은 해야했는데 아이들의 컨디션이 너무나도 좋지 않았기에 곳곳의 포인트마다 희망자만 하차해서 구경하기로 했다. 나는 밤새 받은 스트레스와 찬바람 때문에 병이 나고 말았다. 몸이 너무 좋지 않아 그대로 버스에서 기절. 내가 잠든 사이에 거북바위와 무슨 바위, 무슨 절 등을 지나갔다고.

그리고 이어진 승마체험.. 몽골에서의 승마체험은 우리나라돈으로 1시간에 몇천원 정도밖에 하지 않기 때문에 테를즈에 오면 꼭 거쳐가는 필수코스라고 한다. 내몽골 초원에서 말 끈을 직접 잡고 초원을 질주(!)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살짝 기대를 했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찾아간 곳은 끌어주는 대로 달그락 달그락 걷기만 하는 정도의 체험이었다. 몽골의 말은 특히나 몸집이 작기 때문에 말에게도 미안한 기분이라 체험은 하지 않았다.


약간 비림

점심식사는 승마체험장에서 염소통구이 버덕으로 해결했다. 버덕은 염소의 목을 자른 뒤 내장을 모두 꺼내고 붉은 돌과 고기, 양념 등을 넣어 봉한 뒤 장작불에 구운 음식으로, 양고기 요리인 허르헉과 더북어 몽골 최고의 전통요리로 치는 요리다. 안에 넣은 돌은 고기를 골고루 익히는 역할을 하는데 이렇게 익히면 고기가 부드럽고 연해진다고 한다. 먹을때는 돌을 빼고 고기를 잘라서 먹는데 원래는 버덕을 먹기 전에 돌을 꺼내고 손에 쥐고 식을 때까지 공기돌처럼 주무르면서 기다렸다가 먹는게 정석이라고 한다. 돌을 주무르는동안 찬 손을 따뜻하게 데워서 음식을 더 맛있게 느낄 수 있도록 하고 돌에 스민 기름기가 손에 묻으면서 추운 날씨에도 손이 트지 않게 보호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초원에서의 문화체험은 내가 상상하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불행과 고난의 연속이어서 아쉬움이 너무 많이 남았다. 아름다운 몽골의 풍경을 즐기지도 못하고 꿈꾸는 것 처럼 아름답다는 몽골 밤하늘의 별도 보지 못하고.. 언젠가 몽골에 다시 오게 된다면 그 때는 정말 즐거운 추억만을 남기고 가고 싶다.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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