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특별한 프라하 웨딩촬영:)

 




나의 특별한 프라하 웨딩촬영:)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는, 두 사람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시기다. 사실 둘이면 다행이다. 넷이 될 수도 있고 여섯이나 혹은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


결혼을 준비하다보면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예를들어 야외웨딩, 주례없는 결혼, 하우스웨딩, 예단, 폐백 뭐 그런 것들. 물론 부부의 의지가 확고하고, 부모님이 그것을 받아들일 만큼 열려있는 경우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 





| 사진만 한판 박고 도장이나 찍지 뭘..


나는 결혼식 자체에 큰 로망이 없었다. 사실 하기 싫었다. 단 하루, 그것도 고작 한시간 여를 위해 그 많은 돈을 소비해야 한다는게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 혼자 하는 결혼식이 아니니 결혼식을 치룰 수 밖에. 결혼식이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자연히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 야외웨딩은 제외. "비가 와도 상관 없어 우린 행복하니까"를 외치기엔 난 그닥 긍정적인 편이 아니니까. 하우스 웨딩은, 하우스 웨딩을 할 만큼 여유있는 앞마당이 없었고 어딘가를 빌려서 하자니 그 빌리는 돈이 더 들었다. 문제는 또 있었다. 부모님 손님들이다. 우리가 "우리 결혼식이야"라고 고집을 피웠다면 가능했을지도 모르지만 사실 결혼식은 부모님들이 몇 십년간 키워온 자식들을 시집장가 보내는 날이기도 하다. 당연히 당신들 나름대로의 "자식 시집장가 보내는 날"에 대한 로망이 있을 테다. 우리 부모님들은 예단을 주고받지 않으셨다. 현금이니 현물이니 그런거 전부 다. 대한민국이란 나라에서 부모님께서 이정도로 '욕심'을 내려두셨다면, 결혼식 정도는 우리가 배려해드려야 하는게 아닐까. 뭐, 그래서 결혼식장도 적당히 '예식장' 중에서 골랐다. 저렴하지만, 너무 싼티나지 않는 곳으로. 우리에겐 '예식장'에 어울리는 멋진 주례선생님도 계셨다. 마땅한 주례선생님이 없어 주례를 사기도 하는 시기에 모실 수 있는 주례선생님이 계시다는건 참 감사한 일이다. 우리의 주례선생님은 신랑의 고등학교 은사님이자, 까마득한 대학교 선배님이시다. 당신 결혼식 때 입은 정장을 차려입고 오셨던 것이 기억난다.






| 스드...메?


우리는 부모님께 금전적인 지원을 받지 않았다. 그렇다고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다. 어찌어찌 대출을 끼고 서울 한구석에 두 사람과 두 마리가 살만한 작은 전세집 하나 구한게 전부였으니. 당연히 우리의 결혼 준비는 하고싶은 목록에서 할 수 없는 것을 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했다. 

여러개의 선택지가 우리 손을 떠났다. 대부분 외부요인에 의해 우리가 원하던 것과는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여러가지를 포기하고 선택하는 순간의 나날이었다. 결혼의 전반적인 틀이 잡히면 디테일을 손봐야 할 차례다. 이른바 '스드메'를 해결해야 하는 것이다. 스드메는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을 묶어서 말한다. 신부의 로망은 대부분 이 세가지를 통해 이뤄진다. 일반적으로 '스드메'는 직접 준비하거나 웨딩플래너를 통해 준비한다. 웨딩플래너를 통해 준비한다고 해도 금액이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오히려 저렴할 때도 많다. 하지만 단점도 많다. 담당 플래너와 성격이 잘 맞아야 하고, 내 취향에 맞는 상품들을 적절히 제안해줘야 한다. 각각의 웨딩업체별로 계약맺은 샵이나 스튜디오가 다르기 때문에 자기 스타일이 확고하고 직접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면 솔직히 잘 맞지 않을거다. 나도 그랬다. 그래서 무려 17만원 가까이 위약금을 물고 계약을 파기했다.


게다가 나는 '스튜디오 웨딩촬영'이 너무너무 싫었다. 스튜디오 배경이 다르고, 찍는 스타일이 다르다고 해도 어쨌거나 네모상자 안에서 예쁜척 하는 것. 그래서 나는 스튜디오 촬영을 거부했다. 이런 경우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에서는 "평생 한 번이니까"라는 말로 회유하곤 한다. 내게 평생 한 번뿐인 사진은 '본식스냅' 하나면 충분했다. 심지어 나의 시부모님께서는 우리가 돈이 없어 사진을 못찍는다고 생각하신 나머지 스튜디오 촬영비를 주시겠다는 말씀까지 하셨다. 스튜디오 촬영이 싫어 버티던 어느날, 지금의 신랑은 내게 사진을 찍어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했다. 알고보니 신랑은 사진이 찍고 싶었던 거다.





| 웨딩사진을 외국에서 찍는다고?


청천벽력같은 말이었다. 여태껏 나는 신랑도 같은 생각인 줄 알았다. 절충안을 찾아야만 했다. 당시 인터넷에는 '신혼여행 스냅사진'이 한창 떠오르던 때였다. 해외 유명 신혼여행지에 상주하는 한국인 사진작가를 섭외해 스냅사진을 남기는 것. 평상복을 입고 찍은 것이 대다수였지만, 드레스를 떠올리게 하는 원피스류를 입고 찍은 사진도 종종 보였다. 풀메이크업에 화려한 드레스를 차려입고 찍은 사진도 있었다. 알고보니 현지 업체에서 메이크업부터 드레스까지 다 포함된 사진촬영 패키지를 판매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패키지의 가격은 우리 예산을 훌쩍 뛰어넘은 가격이라는 것.


우리는 체코 프라하로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언젠가 잡지에서 사진 한장을 보고 '난 언젠가 꼭 여기에 가고 말거야'라고 생각했던 곳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결제한 뒤 사진 속 장소가 프라하가 아닌 빈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프라하 역시 언젠가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그리고 프라하에는 꽤 큰 규모로 해외스냅촬영 상품을 판매하는 업체의 지점이 있었다. 한국에 조금씩 불어오던 '셀프웨딩스냅'을 실행하기에 좋은 기회였다. 해외에서 웨딩촬영을 한다는 것은 부모님을 비롯한 지인들을 설득하기에도 좋은 변명거리였다. 업체 홈페이지에 올려진 포트폴리오도 그럴싸했다. 가격도 적당했다. 6시간 촬영, 원본 및 앨범 포함 99만원. 한국의 스튜디오에서 사진찍고 원본CD 등을 구입하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는 가격이다. 나는 신랑을 설득했고, 신랑은 부모님을 설득했다.





| 웨딩소품 준비하기


스냅업체를 골랐으면 다음은 드레스를 포함한 소품 준비를 할 차례다. 나는 긴 드레스 1벌, 미니드레스 1벌을 입기로 했다. 촬영 드레스를 고르는 것은 본식 드레스 고르는 것 보다 어려웠다. 맵시를 위해서 뒷부분은 지퍼가 아닌 끈으로 조절하는 것이어야만 했고, 긴 드레스는 헬퍼 없이도 잘 돌아다녀야 하기 때문에 질질 끌리지 않아야 했다. 1번 입고 말 것이기 때문에 가격도 무시할 수 없었다. 나는 드레스 2벌을 구입하는데 20만원을 상한선으로 뒀다. 다행히 20만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으로 드레스 2벌을 구입할 수 있었다. 미니드레스는 타오바오를 통해 중국에서 직구했고, 긴 드레스는 마포쪽의 한 셀프웨딩드레스 샵에서 구입했다. 샵에서는 헤어악세서리도 무료로 빌려줬다. 구두와 조화부케는 G마켓에서 각각 3만원, 1만원에 샀다. 


그리고 가발을 샀다. 통가발 말고 당고머리 가발. 손재주가 좋으면 좋으련만, 안타깝게도 내 손은 곰손이다. 화장이야 그럭저럭 한다지만 머리가 문제였다. 그 쉽다는 똥머리 하나 예쁘게 못 만들 정도로 재주가 없는데다가 억지로 기른 머리는 개털처럼 흩날릴 뿐이었다. 당고머리가발은 머리를 적당히 하나로 묶고 그 위에 살포시 얹으면 끝이다. 드레스가 두 벌이니 헤어 악세서리를 하거나 머리를 묶는 위치를 조절하면 될 테다.





| 절대로 잊지못할, 특별한 웨딩촬영


해외에서 웨딩촬영을 한다는 건 참 특별한 경험이다. 전 결혼 과정을 통틀어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신랑과 내가 준비한 드레스와 정장은 트렁크에 꾹꾹 눌러 담겨 체코 프라하까지 갔다. 촬영 당일 우리는 정신없이 옷을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 드레스와 정장을 차려입고 거리를 걷는 것은 우리나라에서라면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프라하는 조금 달랐다. 약속장소로 가는 길목에서 우리는 야외 웨딩촬영을 하고 있는 신혼부부를 종종 볼 수 있었다. 몇 시간 뒤 우리도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동양에서 온 신혼부부에게 하나같이 축복의 말을 건넸다. 옆에 와서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신호를 기다리면서부터 시작된 노래는 횡단보도를 건너 우리의 행복을 비는 말로 끝을 맺었다.


기분 좋은 일들의 연속이었지만 촬영만 놓고 봤을 때는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늘씬해보이기 위해 신었던 구두는 프라하 보도블럭 사이 틈으로 자꾸만 빠졌고, 날씨는 맑았다 흐렸다는 반복하다가 결국 비까지 내렸다. 출발 전주까지 18도를 웃돌던 날씨는 우리가 도착함과 동시에 13도 이하로 떨어졌다. 팔과 다리를 훌렁 내놓은 나는 덜덜 떨었고, 신랑은 몸살감기를 얻었다. 변덕스런 날씨 탓에 고생하긴 했지만 덕분에 사진은 더 재미있게 나왔다. 화창한 프라하부터 흐린 프라하, 비오는 프라하까지 다 담겨있다. 





| 프라하 웨딩촬영 그 후..


한국에 돌아와 우리는 페이스북에 촬영 사진을 몇 장 올렸다.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몇몇 커플은 우리의 사진을 보고 해외 스냅 상품을 계약했을 정도다. 부모님들도 모두 만족하셨다. 잘했다는 말과 함께 흔하지 않아서 좋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물론 우리 사진은 스튜디오 화보사진처럼 세련되지 않다. 옷매무새나 화장, 머리도 모두 어설프기 짝이 없다. 받아본 원본 사진은 더 가관이다. 눈을 감는 것은 기본이고 잔머리가 다 삐져나와 있다거나 두턱이 된 모습도 흔하다. 하지만 그런 B컷, 혹은 C컷 조차 소중하다. 사진 한장 한장마다 우리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백조와 사진을 찍으려고 갔는데 백조가 밥을 먹으러 뭍으로 다 나와있었다거나, 먹구름을 뚫고 잠깐 비친 석양빛에 호들갑떨며 까를교를 뛰어다녔던 일 같은 것 말이다.


우리는 1,000장 가까운 사진 중에서 마음에 드는 서른 장을 골라 앨범을 만들었다. 우리의 웨딩사진은 여행사진이기도 하다. 웨딩사진은 결혼한 지 6개월이면 장농행이라지만, 우리는 아직도 종종 웨딩 사진을 꺼내본다. 우리의 웨딩사진에는 그날의 하늘빛과 우리의 행복한 미소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이미지 맵

    Europe/Czech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