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구채구 측사와구,세상 모든 파란색이 다 모여있는 곳(오채지,수정구)

구채구는 많은 중국인들이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꼽는 비경이다. 그리고 지난 여행기에서 말했듯이 구채구는 다른 유명 관광지와 달리 황제가 다녀간 곳이라거나 아찔한 절벽에 세워진 정자처럼 사람의 손을 탄 흔적이나 문화재 없이 오로지 자연 그 하나만을 선보이고 있다. 명산과 비경이라면 으레 있을 법한 것들이 구채구에 하나도 없는 이유는, 구채구가 1만여 년의 중국 역사에서 단 한번도 존재를 드러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쓰촨성 깊은 산 속에 꼭꼭 숨어있던 골짜기인 구채구는, 1975년 어느 벌목공이 산을 헤매다 우연히 이 곳에 발을 디딘 것을 계기로 세상에 나오게 되었고 그때서야 비로소 중국 정부가 이 곳의 존재를 인지했다고 한다. 그리고 9세기경 당나라 군을 피해 산이 깊고 해발이 높은 산자락인 구채구로 도망간 뒤, 오랜 시간 이 곳에서 둥지를 틀고 살던 장족도 처음으로 산 밖의 사람들, 한족들과 접촉을 했다고 한다.


 

 

사연도 많고 볼거리도 많은 구채구의 여행코스는 알파벳 Y자 형태로 되어있다. 보통 Y자의 오른쪽에 있는 일측구를 먼저 보고 내려와 중간의 교차점에서 식사를 하고, 왼쪽의 끝으로 올라가서 측사와구와 수정구를 보며 내려오는 코스가 일반적이라고 한다. 내가 속한 투어 역시 일측구의 전죽해,팬더해,오화해,진주탄,경해를 먼저 본 뒤 식사를 하기 위해 중간 교차 지점으로 돌아왔다.

 




구채구 내의 식당은 이 곳 하나 밖에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여행객들이 이 곳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그렇기 때문에 규모도 동시에 1천명이 식사를 할 수 있을정도로 크다. 이 곳에서 먹을 수 있는 메뉴는 중국식 뷔페요리로 가격대는 최저 60元부터 시작해서 138元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우리 일행은 1인당 90元짜리 식사를 했는데, 음식이 따뜻하지 않고 차가워진 상태이고 간이 맞지 않아서 거의 입만 대는 수준으로 먹고 나왔다. 



가벼운 식사를 한 뒤, 이번에는 Y자의 왼쪽 방향의 코스인 측사와구를 달리는 순환버스에 올랐다. 원시삼림, 전죽해, 팬더해, 오화해, 진주탄, 경해, 낙일랑폭포 등 다양한 볼거리가 있는 일측구와는 달리 측사와구에는 장해, 오채지, 계절해 이렇게 3곳의 호수 밖에 없어서 볼거리의 갯수는 비교적 적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측사와구에는 구채구에서 가장 큰 호수인 장해(长海)와 가장 아름다운 물빛을 지녔다는 오채지(五彩地)가 있기 때문에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코스이다.

 측사와구 코스의 맨 윗쪽까지 오르면 구채구에서 가장 큰 호수인 장해(长海)가 나온다. 장해는 해발 3060M에 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고산증세가 나올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장해까지 오르지 않고, 계절해에 잠시 들렀다가 오채지를 둘러보는 코스로 이 곳을 둘러본다고 한다.


 순환버스를 타고 측사와구 코스를 오르는 길.. 버스 차창 밖으로 장족의 마을이 하나 스쳐 지나간다. 정류장이 지정되어있고 기념품을 팔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곳도 개방된 3곳의 마을 중 하나인 것 같다. 장족마을에는 내려오는 길에 시간을 보고 들르기로 하고, 일단 오채지를 향해 이동하기로 했다.

 우리는 오채지로 오르기 전 나오는 호수인 중계절해(中季节海)에서 잠시 버스에서 내렸다. 계절해는 계절에 따라 호수에 고인 물의 양이 달라져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비가 많이 내리는 가을철에 호수 가득 물이 고이고 초여름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물이 마르다가 초여름에는 호수 바닥의 물이 거의 마르고 풀이 자라나 소나 말의 방목지가 되는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내가 계절해에 찾아갔을 시기는 겨울이었기 때문에 호수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여름이 되고 이 곳이 목초지로 변한 모습도 참 궁금하다.


 계절해 앞에서도 장족의 전통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어볼 수 있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이국적인 모양의 전통악기인 발랑고(拨浪鼓)도 팔고 있었다. 팬더해에서 사진을 찍지 못했던 것에 아쉬움이 남았기에 사진 샘플을 들고 있는 한 장족에게 다가가 잠시 가격을 물어보기도 했지만, 얼른 오채지로 이동해야한다는 말에 이내 사진 찍는 것을 포기하고 다음 버스에 올랐다.

 


아침 일찍 일어나 수 많은 호수들을 둘러보다보니 내심 얼른 숙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방금 전에 보고 온 경해의 모습이 강한 인상을 남긴데다가 오화해의 물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기에 굳이 오채지까지 봐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순환버스에서 내려서 오채지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그 모든 생각들은 한 순간에 사라져버렸다.

눈꽃이 가득 맺힌 나뭇 가지 사이로 온갖 종류의 푸른 물감을 쏟아놓은 듯한 작은 호수. 바로 구채구의 백미, 오채지(五彩地)다. 



 

아주 먼 옛날 구채구에는 달파라는 남자 신과 아름다운 여신 옥락색모가 서로 사랑하며 살고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달파는 바람과 달빛으로 보석거울을 만들어 옥락색모에게 선물 했는데, 이를 시기한 마귀때문에 옥락색모는 거울을 깨뜨렸고 산산조각난 거울의 파편이 골짜기 곳곳에 떨어져 신비스러운 빛깔을 지닌 114개의 호수로 변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수 많은 호수 중에서도 오채지는 색모 여신이 세수를 하던 곳으로, 그녀를 사랑한 산신 달과가 색모 여신을 위해 매일 장해에서 맑은 물을 떠다 주었다고 한다. 시간이 흐르며 달과가 물을 긷기 위해 오르내리던 길에 189개의 계단이 생겼고 색모 여신이 세수를 하며 씻겨 나간 연지 곤지가 변해 오색 빛깔의 물빛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사랑 전설이 깃든 곳이라 그런지 오채지 앞에서는 유독 손을 꼭 잡고 소원을 비는 커플들의 모습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오채지는 구채구에 있는 호수 중에서도 가장 작은 크기인데, 그래서인지 OO해, OO해 라고 바다 해(海)자가 붙어 있는 다른 호수들과 달리 연못 지(地)가 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 옛날 바다를 그리며 호수 하나 하나에 바다 이름을 붙였던 장족들의 눈에도 오채지는 바다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아보였나보다.

넓은 호수가 가진 아름다움을 작게 응축시켜 놓은 듯 그 작은 크기의 연못 안에는 세상의 모든 푸른빛이 담겨있었다. 오채지로 흘러든 장해의 호수 물에 함유된 탄산칼슘이 만들어내는 에메랄드빛, 쪽빛, 군청색, 녹색, 비취색.. 이름을 몰라 표현할 수 없는 수 많은 푸른 빛들... 그 중에서도 비취색 물 빛은 오로지 빙하 녹은 물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색이라고 하니 더욱 특별하다.

 


흰 눈때문에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린 사이에서 오채지만이 오롯이 영롱한 푸른빛을 내뿜고 있다. 가끔 멋진 경관을 보고 있다 보면 내가 보는 것이 실제가 맞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걸음을 옮길 때 마다 변하는 호수의 물빛, 언제인가 이 곳에서 물장구 치고 놀던 어린아이들을 상상해보기도 하고 작은 호수에 닮긴 하늘을 가만히 들여다 보기도 하며 이 순간을 가슴에 담아본다.




오채지의 물색과 비견되는 것이 일측구의 오화해인데, 오채지를 보고 나니 오화해를 먼저 보고 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아름다운 구채구 여행의 백미 오채지. 이제 우리는 오채지를 뒤로 하고 다시 성도로 돌아가야 한다.



오채지에서 다시 순환버스를 타고 구채구 입구 쪽으로 이동했다. 측사와구를 벗어나 중간 교차점을 지나 '호랑이바다'라는 뜻의 노화해(老虎海)에 잠시 버스가 멈춰 선다. 둘러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에 수정구의 수정채(樹正寨)로 바로 이동했다.

수정채는 9개의 장족 마을 중 가장 큰 마을로, 마을 입구에는 9개의 구보연화연탑(九寶蓮花蓮塔)과 오색 깃발이 세워져있다. 이 오색 깃발은 티벳말로는 '룽따'라고 부르는 것으로 이 곳에서는 풍념경(風念經)이라고 불리우고 있었다. 이 깃발에는 빽빽하게 티벳불교의 불경이 적혀있는데,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에게 바람이 대신 경전을 읽어준다는 의미라고 한다.

 


↑ 햇빛이 비치는 절반은 봄이고, 나머지 절반은 겨울이다.
 

수정채는 개방된 3개의 마을 중에서도 가장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마을 안쪽으로 들어가는 커다란 아치 모양의 입구에는 '구채구장족민속문화촌'이라는 글자가 선명하다. 그렇다. 현재의 수정채는 마을의 대부분이 기념품가게로 변한 일종의 민속촌 같은 느낌으로 변해버렸기에 장족들의 생활을 엿보기는 어려운 모습이었다. 어쨌거나 장족들이 만든 수공예품을 구입하기에는 이만한 곳도 없어 보였다. 

 



수정구 안으로 들어가는 길 곳곳에는 꼭 우리나라 운동회에서 만국기를 걸어놓듯 작은 손수건 크기의 오색 천 '다르촉'이 기다란 줄에 걸려있었다. 이 오색의 '다르촉'도 아까의 룽따처럼 글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람이 대신 경전을 읽어준다는 의미로, '룽따'와 '다르촉'의 다섯가지 색깔 중 노란색은 땅, 파란색은 하늘, 초록색은 바다, 흰색은 구름, 빨간색은 불을 상징한다고 한다.

스물 한 살 때였던가? 중국 배낭여행을 하다가 도착한 내몽고에서 처음으로 이 다르촉을 보았다. 그 때는 이 것이 가진 의미를 알 지 못해서 그냥 지나쳤었는데, 여행이 끝나고 한참 뒤 그 뜻을 알고나서는 미리 알고 여행하지 못했던 것을 후회했었다.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고 아는 만큼 더 많은 것을 얻어 돌아온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글을 읽은 뒤 나중에라도 티벳불교의 영향을 받은 지역을 여행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쯤 '룽따'와 '다르촉'에 대한 내용을 떠올려주었으면 좋겠다.

 

 

어려운 이야기를 잠시 접어두고 다시 즐거운 구채구 여행기로 돌아가서..수정채에서 팔고 있는 기념품들은 대체로 이 곳의 장족들이 직접 만드는 수공예품이다. 예쁘게 수놓아진 방석부터 나무나 야크뿔 등을 깎아 만든 장식품 등 하나같이 화려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몇 군데의 기념품 가게를 지나 더 안쪽으로 들어가려는데 한 가게에서 야크뼈 같은 것을 줄톱을 이용해서 갈아 빗을 만들고있었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하니 싱긋 웃으며 답한다. 이런 기념품이라면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가격을 물어보고 싶었지만 수정채를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 10여분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에 기념품을 사는 것은 포기하기로 했다. 이래저래 시간 때문에 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아서 속상하다.




길을 따라 쭉 올라가니 세 개의 마니차가 눈에 띈다. 마니차는 겉에 진언이 적혀있고 안에는 경전이 들어있는 원통으로 마니차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읽은 것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한다. 티벳불교가 있는 대부분의 지역에서 마니차를 시계방향으로 돌리는 것과 달리 구채구의 장족들은 왼쪽으로 돌린다. 아마도 오랜 시간 티벳 본토와 떨어져 지내면서 방식이 조금씩 달라진 것으로 생각된다. 그나저나 마니차가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불교 사원 같은 것 같은데 문이 잠겨있어서 그저 겉모습만을 잠시 구경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발걸음을 돌려 다시 수정채 입구로 내려가는 길.. 다급하게 부르는 가이드의 목소리에 버스를 타는 곳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살짝 열린 대문 틈 사이로 이 곳의 누군가가 살고 있을 법한 집의 마당이 눈에 들어온다. 이 곳이 정말 그들이 지친 몸을 뉘여 쉬는 집인지 아닌지 궁금했지만 내게는 그것을 살필 잠깐의 시간 조차 허락되지 않았기에 나는 그저 이 곳 구채구를 잠시 스쳐가는 관광객의 자세로 돌아와 바삐 발걸음을 옮길 수 밖에 없었다. 진한 아쉬움.. 이 곳에 둥지를 트고 살아왔던 장족의 삶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이 곳에 반드시 다시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구채구, 관광객의 눈이 아닌 여행가의 마음을 가지고 이 곳을 다시 찾을 순간을 기약해본다.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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