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샤먼 구랑위, 음악이 흐르는 피아노의 섬



1842년 청나라는 아편전쟁에서 서구 열강에 패한 뒤, 광저우(廣州)·샤먼(夏門)·푸저우(福州)·닝보(寧波)·상하이(上海) 5개항을 개항하고 외국인 거주를 허용하는 내용을 포함한 난징조약을 체결한다. 샤먼과 마주보고있는 작은 섬인 구랑위는 1860년 영,프,독인인들이 거주하며 외국인 거주지역이 되었는데, 영국이 영사관을 개청한 이후 13개국 이상의 영사관이 이곳에 들어섰고, 1903년 공동/단독으로 행정.사법.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공식 조계지로 인정받았다. 그리고 조계지역은 1942년 일본이 물러날 때까지 이어졌다. 

조계지역이 설정된 곳들은 대개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한다. 상해 조계지에 "개와 중국인 출입금지(華人與狗不得入內)"라는 굴욕적인 팻말이 붙었던 것 처럼 구랑위 역시 그랬다. 따뜻한 햇살, 상쾌한 바람, 아름답게 늘어선 별장거리.. 이런 풍경을 오직 서양인들만 소유하기 위해서. 지금은 그들이 남긴 서양식 건축물과 조경이 풍기는 이국적인 분위기 덕분에 중국의 AAAAA급 관광지가 되었으니 세상은 참 아이러니하다 




아름답고 조용한 섬, 구랑위에서 맞이한 아침. 간밤에 난방이 되지 않아서 패딩까지 껴입고 잤더니 몸이 뻐근하기 이를데 없다. 일어나서 씻고 한껏 기침을 하며 머리를 말리는데, 옆 침대 아가씨가 간밤에 미안했다고 말을 걸어온다. 새벽에 친구와 통화하고 컴퓨터로 노래듣고. 여러모로 힘들어서 뒤척였기 때문. 이 아가씨는 사천에서 혼자 여행을 와서, 어제까지 샤먼과 구랑위 구경을 하고 오늘 돌아간다고 한다. 나갈 준비를 하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가씨는 좀 더 잠을 잔다고 하기에 먼저 짐을 싸서 밖으로 나왔다. 어제 유스호스텔 카운터에서 짐 보관에 관한 공지글을 읽은 것이 생각나 물어보니 무료로 짐을 맡아준단다. 

유스호스텔에서 나와서 구랑위 관광지를 돌아볼 통표를 찾기 위해 관광안내센터로 걸어 내려갔다. 단체 관광객들이 오지 않은 이른 시간, 한가롭고 상쾌한 구랑위의 분위기는 정말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구랑위 선착장 앞쪽에 있는 관광센터에서는 호월원/일광암/숙정화원/백조원/오르골박물관에 입장할 수 있는 통표를 판매하고 있다. 물론 가고 싶은 장소 앞에서 따로 입장권을 판매하기도 한다. 통표의 가격은 100원(2012 기준). 표를 따로따로 살 때보다 30원가량 절약할 수 있다. 현금을 조금만 가지고 가기 위해서 미리 타오바오(淘宝)를 통해 전자표를 예약해두었다. 인터넷으로 전자표를 구입하면 10원을 더 할인받은 90원에 구입할 수 있는데, 타오바오로 전자표를 미리 구입하려는 사람들은 예약시에 "중문이름"으로 예약을 하거나 예약번호를 알아야 안내소에서 검색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여권이름이랑 동일하게 영문으로 예약을 하면 관광안내소에서 검색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 타오바오에서 티켓 구입시 안내받은 가이드(导游)에게 전화해서 예약번호를 다시 받아서 표를 찾을 수 있었다. 



통표를 찾은 뒤, 본격적으로 둘째날 일정을 시작했다.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등 바퀴달린 것들의 운행이 금지되어있는 조용한 섬 구랑위의 관광지를 돌아보는 방법은 2가지가 있다. 튼튼한 두 다리와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도보여행. 그리고 시간 절약을 해야하고 예산은 좀 있다~ 싶으면 전기자동차 탑승! 선착장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섬을 일주하는 전기자동차들이 있다. 구랑위를 운행할 수 있는 유일한 바퀴달린 탈것이다. 1인당 50원이고 섬의 주요 관광지+섬일주하는 코스로, 중간중간 원하는 장소에서 내려서 구경을 한 뒤, 나와서 표를 보여주면 아무 전기차나 다시 탈 수 있다. 웬만하면 전기차를 타고 일단 구경을 쭉~~한다음에 남는 시간에 다시 산책을 하는 것을 추천한다.





첫 목적지인 호월원(湖月园)에 가기 위해 정성공 석상이 있는 쪽으로 걸어가는길. 일찍일어나 걷기 시작하니 배가 살살 고파오던 차에 구랑위의 대표 간식 중 하나인 오징어완자꼬치를 파는 곳이 마침 딱 눈에 띄었다. 꼬치 1개에 5원, 완자는 5개가 꽃혀있어요! 배고파서 두 알 먹고나서야 사진찍을 생각이 드는 바람에 사진에는 세개만. 고소하고 진한 오징어 향기와 쫀뜩한 식감! 여기에 상쾌한 바다바람과 야자수가 심어진 산책로를 걷다보니 "이게 바로 행복이구나!"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물론 구랑위 특색 음식은 여러가지가 있다. 이건 오징어꼬치 옆에서 팔던 만두인데, 꼭 우리나라 약밥같은것이 들어있다. 맛은 그냥저냥.
 

 



한 5분정도 걸었을까? 금새 호월원(湖月园)에 도착했다. 통표를 보여주니 펀치로 글자 옆에 구멍을 뚫어준다.

호월원은 정성공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장소로, 정성공은 명나라 말 구랑위를 거점으로 수군을 훈련시켜서 대만을 침략한 네덜란드인들을 몰아냈다하는 명대 말기의 명장이다. 대만출신이라 특히 대만인들의 존경심이 각별하며, 중국본토에서도 정성공에 대한 평가가 높단다. 본토 생각으로는 어짜피 대만은 내 땅, 정성공은 네덜란드로부터 내 땅을 지켜낸 영웅.. 뭐 이런 논리인걸까? 어쨌거나 중국 본토에서는 정성공 탄생 380주년이 된 2004년에는 천주시에 세계 최대 크기의 기마동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곳 구랑위의 석상도 어마어마하게 크다.  





전 날 저녁에 약간 빗방울이 떨어졌었는데, 밤 새 비가 내렸는지 풀들이 촉촉하게 젖어있다. 샤먼.. 바다.. 어김없이 비가 왔다. 호월원은 한적하고 평화로운 분위기이긴 했지만, 딱히 볼거리는 없었다. '뭔가를 보겠다!'라는 생각보다 구랑위의 분위기를 즐긴다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산책을 한다면 좋을 듯.



 

 

해변에 조성된 예쁜 정원을 지나서 걸어가다보면, 맞은편에 샤먼 시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정원과 이어진 작은 다리를 건너면 정성공 석상을 조망할 수 있는 정자에도 올라갈 수 있다. 물론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산책로를 따라서 정성공 석상이 있는 전망대까지도 올라갈 수 있다. 하지만 정성공 석상에 큰 감흥이 없기에 높은 곳은 PASS.. 





호월원에서 나와 지도를 보고 일광암 방향으로 가는 길. 신나게 헤메기 시작했다. 분명히 지도상에선 도보로 15분정도면 도착하는 거리인데 1시간을 빙글빙글. 나중에는 일광암 방향이라는 이정표도 나오지 않아서 거의 좌절상태였는데, 다행히 친절하신 구멍가게 아저씨 덕분에 잘 찾아갈 수 있었다. 

헤메면서 만난 구랑위 골목길들은 정말 아름다웠다. 화창한 날씨에 시원하게 늘어선 야자수들과 오래된 건물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피아노소리! 구랑위는 피아노섬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름에 걸맞게 섬 곳곳에 숨겨진 스피커를 통해 피아노 소리가 들려온다. 




그렇게 걷고 걸어서 도착한 일광암(日光岩)"황암"으로도 불리는 일광암은, 구랑위에서 제일 높은 봉인데 바로 이 곳에서 정성공이 군사를 주둔하고 훈련시켰다고 한다. 일광암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구랑위와 샤먼의 경치가 좋은 것으로 유명한데, 날씨가 맑은 날에는 대만령인 금문도까지 볼 수 있다고 한다.
 



 

 



입구를 지키는 해태를 지나면 사당이 나오고, 그 옆으로 올라가는 길이 있다. 일광암 곳곳에는 사진을 찍어서 바로 인화해주는 아저씨들이 많이 있어요. 가격은 15원, 깎으려면 깎을 수도 있겠지만 귀찮으니 그냥 찍는걸로.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선택하면 5분정도 후에 인화된 사진을 받아볼 수 있다.



 

 

 

사당 옆쪽에 계단으로 길이 나있다. 모두 계단이라 다리가 조금 아프긴 하지만 생각보다 높지는 않다. 곳곳에는 이렇게 오래된 나무의 뿌리도 보이고, 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온다. 계단 끝에서 나오는 빛을 보고있자니, 어쩐지 저기가 천국인 것만 같은 착각도.





일광암 꼭대기에는 콘크리트로 전망대같은 것을 작게 만들어놨는데, 그곳으로 올라가는 계단 직전에는 간식거리를 파는 곳이 있다. 물을 가져오지 않아서 목이 너무너무 마르던 차에 싱싱한 과일로 만들어주는 생과일주스를 만나니까 어찌나 반갑던지! 아까의 그 빛은 진짜 천국의 빛....과일천국의 빛이었다. 제일 싱싱해보이는 딸기생과일주스를 10원에 사서 그 자리에서 꿀꺽꿀꺽 다 마신 뒤, 마지막 계단으로 단숨에 이동!




일광암 정상에서 내려다 본 구랑위의 모습. 아기자기한 서양식 별장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바다 건너 샤먼섬의 모습까지 펼쳐져 있다. 


 


일광암에서는 맞은편의 백조원까지 연결되는 케이블카가 있다. 심지어 무료! 우여곡절끝에 찾은 케이블카탑승장은 운행중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비수기라 그렇지 않을까 싶다. 결국 밀려오는 다리 통증을 안고 일광암을 내려와서 다음 행선지로 이동. 다음 목적지는 백조원과 숙정화원이다.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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