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후인(湯布院) 북쪽에 있는 긴린코호수. 해 질 녘 호수 위로 힘차게 뛰어오른 물고기가 햇빛에 반사되어 금빛으로 보인다고 해서 '긴린코(金鱗湖)'라는 이름을 얻었단다. 호수 바닥에서 차가운 지하수와 뜨거운 온천수가 동시에 흘러나와 물 안개가 자주 끼는 것이 특징이라고..
긴린코가 그렇게 아름답다기에 기대란 기대는 모두 끌어모아 한껏 안고 유후인으로 향했다. 가이드의 안내를 따라 산책로 안쪽으로 들어가니 조금씩 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이드는 자유시간을 줬다. 응? 긴린코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이 작은 물웅덩이가 설마 호수는 아니겠지..
긴린코가 가장 아름답다는 이른 아침이 아니어서였을까, 아니면 가이드의 허풍이 너무 심했던 탓일까. 호수라기엔 너무 작은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말았다. 잠시 주어진 자유시간.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사진은 찍어야겠다는 엄마의 말에 이리저리 둘러보다 보니 조금씩 괜찮은 구석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순간 잉어가 뛰어오르면 그야말로 긴린코(金鱗湖)
물길을 따라 마련된 산책로는 꽤나 운치 있었다. 수면 아래에서 유유히 헤엄치는 팔뚝만 한 잉어도 볼만했고, 예쁘게 지어놓은 건물 한 채도 그럴싸했다. 크고 화려한 멋은 없지만 간결하고 단정한 매력이 있었다. 작고 정교한 느낌이 그야말로 '일본'스러웠다. 겨울의 긴린코는 자세히 볼수록 아름답고, 오래 볼 수록 좋다. 나른함이 느껴질 만큼 잔잔한 호수와 한가롭게 헤엄치는 오리떼가 기억에 오래 남는 곳-.
물 안개가 피어올라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이른 아침이 제일 아름답다지만, 해가 넘어가기 시작한 늦은 오후의 낭만도 그에 못지않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겨우 매달려있던 빛바랜 이파리들이 부드러운 금빛으로 물들고 호수 위로 잔잔한 나른함이 촉촉하게 녹아드는 모습이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드는 것. 전날 유후인에서 밤을 보내지 않았다면 늦은 오후를 노려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유후인을 누비는 인력거는 1구간 3,000엔부터.
유후인의 어느 식당에서
크로켓보다 고로케가 더 어울리는 그맛
긴린코에서 유후인 역 방향으로 한참을 걸으면 도토리의 숲 '동그리노모리(どんぐりの森)'가 나온다. 커다란 토토루가 맞이하는 이곳은 미아자키 하야오(宮崎駿)가 창조한 모든 것들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가게 안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고양이 버스, 키키, 포뇨, 가오나시같은 익숙한 캐릭터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이곳을 절대로 떠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가게 구석구석 공을 들여 꾸며놓은 느낌이었다.
2시간의 자유시간이 끝났다. 유후인을 걷고, 맛보고, 느끼기엔 너무나도 짧은 시간. 그새 더 길게 드리운 햇살이 이곳을 떠나야만 하는 나의 마음을 더 아쉽게 만드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렇게 떠나는 편이 더 나았는지도 모르겠다. 아쉬움을 남기고 돌아서야 '언젠가'를 기약할 수 있는 거니까.
△유후인 가는길=
인천에서 후쿠오카까지는 1시간 20분이면 도착한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등 취항 항공사가 많으므로 일정·가격에 따라 적절한 곳을 이용할 것. 유후인까지는 후쿠오카 공항·하카타 버스터미널에서 유후인까지 운행하는 버스(약 2시간 30분 소요)를 이용하거나 하카타역에서 JR 북큐슈 레일패스(산큐패스)를 이용해 유후인노모리 열차(약 2시간 소요)를 탑승하면 된다. 최근에는 당일 버스 투어 상품도 많이 생겨났으니 참고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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