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 하쿠토신사, 토끼야 내 사랑을 이뤄줘!

내 생에 두번째 일본은 요나고와 돗토리였다. 갑작스레 떠난 여행이라 여행책 한 권 볼 시간도 없었다. 할 줄 아는 일본어라고는 ‘곤니치와’ 정도가 끝. 일을 하지 않았을때라서 경비도 넉넉하지 않았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몰라도 그냥 괜찮을 것 같았다. 요나고에서 하루를 보내고나서 기차를 타고 돗토리역으로 갔다. 돗토리역에는 관광객을 위한 1,000엔 택시가 있었다. 시간 내에 돗토리 시 안의 여행지를 골라서 둘러볼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기차 시간에 맞춰야했기 때문에 3시간 안에 돌아와야 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돗토리 사구와 사구 모래미술관을 둘러보고 하쿠토신사 白兎神社를 거친 뒤 근처의 기차역에 내리기로 했다. 아름답기로 유명한 하쿠토 해안가에 있는 하쿠토신사는 짧은 돗토리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곳이었다. 시원하게 펼쳐진 바다도, 소박한 모양새의 신사도 참 아름다웠다. 

돗토리에서 흰토끼는 사랑을 이루어주는 신이다. 하쿠토해안에는 오키노시마라는 섬이 하나 있다. 흰토끼 전설은 옛날 옛적 이 섬에 살던 흰토끼 한마리가 이나바에 살던 여신을 만나기 위해 섬을 나가려던데서 시작한다. 토끼는 상어의 숫자를 세어주겠다고 속이고 그 등을 밟아 섬으로 나가려고 했다. 육지에 거의 다 도착했을 때 토끼의 거짓말이 들통나버렸고, 이에 화가 난 상어는 토끼의 털을 전부 뽑아버렸다. 벌거숭이가 된 토끼가 아파서 울고 있을 때, 지나가던 한 무리의 신 중 한 명이 장난으로 바닷물에 씻으면 괜찮아진다고 일러줬고, 토끼는 그들의 말을 철썩같이 믿으며 바닷물에 몸을 씻고 바람에 몸을 말렸다. 

거짓 치료법 탓에 당연히 통증이 점점 심해질 때, 앞선 이들의 짐을 바리바리 둘러 멘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가 토끼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심성이 고운 그는 토끼에게 다시 털이 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고, 그의 말대로 따른 토끼의 몸에서는 다시 보송보송한 털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 앞선 이들과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는 모두 이나바에 사는 아름다운 야가미공주에게 청혼을 하기 위해 가는 길이었다. 토끼는 고마움의 표시로 그들보다 먼저 이나바에 도착해 공주에게 그동안의 일을 알려 공주가 미코토를 선택할 수 있게 도와줬고, 마침내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하쿠토 해안 앞쪽의 신사는 설화 속 흰 토끼인 하쿠토신을 모시는 신사다. 오오쿠니누시노 미코토와 야가미공주를 연결해준 것을 계기로 흰 토끼가 ‘인연을 맺어주는 신’으로 추앙받은 것이다. '하쿠토'를 한자로 하면 '흰 토끼'다. 신사로 가는 길 양옆에는 돌로 만들어진 토끼들이 신사를 향해 깡충깡충 뛰어가는 모습으로 조각되어있다. 유일하게 신사 방향이 아닌 바다 쪽을 바라보는 첫 번째 토끼에는 흰 돌이 수북이 올려져 있다. 인연을 찾길 바라는 사람들이 올려두고 간 것이다. 

토끼의 피부병이 나았다고 해서 피부병과도 관련이 있는 신사라는데, 모두들 인연을 이어주는 곳이라고 여긴단다. 고작 건물 2~3채가 전부인 하쿠토신사는 굉장히 작은 편이지만 아담한 목조건물과 조용한 주변의 풍경이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이따금 무언가를 비는 사람들이 하쿠토신사 본당 앞에 서서 기도를 한다.  본당 앞의 통에 돈을 넣고 줄을 흔든 뒤 박수 두번을 치고 기도를 하면 된다고. 인연을 이어주는 신사인 만큼 동전은 5엔짜리가 적당하려나.(5엔의 일본어 발음은 '인연'이라는 단어와 발음이 같다)

본당 옆 건물에서는 토끼모양 오미쿠지를 팔고 있었다. 생김새가 너무 귀여워서 살까 고민하다가 제일 저렴한 오미쿠지 하나를 샀다. 일본어를 하지 못하니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좋았겠거나 생각하면서 나무에 매달았다. 이쯤 만나기 시작한 사람이 지금의 남편인 홍군이다. 원래 인연이었는지, 아니면 토끼가 힘을 좀 쓴건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흰토끼를 볼 때마다 이곳 생각이 난다.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오미쿠지를 나무에 매달까? 후후. 그건 비밀로 하자.

| 하쿠토신사 白兎神社

-주소: 鳥取県 鳥取市 白兎603

-가는 방법: JR돗토리역에서 히노마루(日ノ丸)버스 青谷・鹿野温泉방면 버스를 타고 35분, 白兎神社 버스 정류소에서 하차. 또는 1000엔 택시 이용

-개방시간: 신사 내 관람 자유, 휴일 없음

-입장료: 무료

-문의: 0857-59-0047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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