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허난성 여행, 상치우에서 한나라를 배우다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 광저우 등 이름만 말하면 무엇이 있고, 무엇이 유명한지 알 수 있도록 잘 개발되고 홍보된 중국 동·남부 지역과 달리 중서부 지역은 많이 알려지지도 않았고 관광자원이 잘 개발되지도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기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중국의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다.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고, 그 기나긴 세월 동안 말도 안돼는 유적과 유물을 남겨둔 - 그걸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중국이니까. 삼국지의 '낙양'이 있고 황하가 흐르는 그 옛날의 '중원'이라는 것만 떠올려봐도 뭔가 있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중국 중부 내륙지역은, 정말 신나게 보물찾기를 할 수 있는 곳이다. 이름을 듣고 초록창에 검색을 해봐도 도저히 뭐가 있는지, 어디에 있는지 아리송하기만 했던 상치우(商邱)시는 이번 여행에서 내가 발견한 꽤 괜찮은 보물이다. 



나는 크고 아름답고 압도적인 것에 종종 마음을 뺏기곤 한다. 10년 전, 서툰 중국어로 겨우겨우 찾아간 베이징에서 만리장성을 본 순간 나는 한 순간에 꿀먹은 벙어리가 됐다. 만리장성은 정말 '대륙의 스케일'이었고, 그 자체로 감동이었으니까. 중국인들이 그 오랜 시간에 걸쳐 한 '삽질'을 보는 것은 정말 재미있는 일이다. 사람은 더 큰 쾌감을 얻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고 했던가? 미친 크기의, 심지어 아름답기까지 한 인공호수라거나 호수를 만들기 위해 퍼낸 흙이 산이 되었다거나.. 혹은 사후 세계를 위해 병마용을 엄청 만들어서 땅에 파묻었다는 류의 이야기는 하도 듣다보니 이젠 '대륙의 흔한 삽질'정도로 여겨진다. 상치우 여행을 하며 알게된 망탕산(芒砀山) 또한 '대륙의 스케일'을 보여주는 유적지였다. 엄청난 스케일에 헛웃음만 헛헛 나오는 그런 유적지. 


망탕산한원화징취(芒砀山汉文化景区,망당산한문화관광특구)는 허난성 동부 상추시에 있는 한(漢)나라 문화 관광지다. 규모는 14㎢, 10개의 산으로 구성되어 있다.(한마디로 엄청 크고 넓다.) 망탕산은 중국 역사 중에서 가장 역사가 길었던 나라인 한나라의 문화를 잘 담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공자, 진시황, 한고조(유방), 이태백, 두부 등 역사적인 인물의 발자취 또한 많이 남아있다. 

보안산왕릉구(保安山王陵景区)의 서한양국왕릉(西汉梁国)이다.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입구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주요 코스를 운행하는 전기차를 이용해야 한다. 전기차에 올라 오르막길을 오르고 올라 산 앞에 내렸고, 내린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왕릉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있었다. 석묘 입구로 들어가니 상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규모다. 방도 여러개고 화장실의 역할을 하던 곳과 냉장고 역할을 하던 공간까지 없는게 없었다. 실제로 왕릉은 그 크기가 중국 전역을 통틀어 가장 크다고 한다. 


석묘의 크기보다도 더 유명한 것은 이곳에서 출토된 금루옥의(金缕玉衣)다. 금루옥의는 금실로 옥을 꿰어서 만든 수의인데 옛 한나라 사람들은 이렇게 금과 옥으로 만든 수의를 입으면 시신이 썩지 않는다고 믿었다고 한다. 발굴된 석묘를 둘러보는데 벽화가 선명해서 복원한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 2천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선명한 색을 품을 수 있었던 비밀이 뭘까 궁금해지던 순간.



이곳에서는 상시로 한문화 홍보행사를 진행한다. 한복(漢服-한나라 복장)을 입는 체험이나 한나라 혼례식을 거행하는 행사, 한나라 때의 전통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탈춤을 연상케 하는 한나라 전통 공연을 감상한 뒤 한나라 혼례식을 구경했는데, 붉은 예복과 신혼방 등이 참 아름다웠다. 상추시 시장 및 여러 담당자님의 배려로 한나라 복장 중 결혼 예복을 입어볼 수 있었다. 베이징의 고궁을 비롯한 대부분의 중국 전통 복장 체험이 청나라의 옷을 입어보는 것이기에 한나라 때의 옷을 입는건 더 특별하고 재미있는 경험으로 다가왔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단체 사진 촬영을 마치고 향한 곳은 공자를 기념하는 사당인 문성원(文圣园). 이곳에는 공자를 기리는 작은 사원과 공자와 그의 제자들이 비를 피했다는 암석이 있었다. 나는 이곳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를 볼 수 있었는데, 바로 한나라 때의 성인식을 재현하는 행사였다. 동네의 학교에서 불려나왔을 것이 분명한 남녀 청소년들과 몇몇의 어머니가 한나라때의 옷을 입고 성인식을 재현하고 있었는데 사회자가 어머니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지며 200% 몰입하는게 아닌가!


문성원에서 나와 1시간 정도를 달려 어딘가로 향했다. 그곳이 어디인지 아직까지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어쨌거나 이 지역을 관할하는 당서기를 만나기 위해 가는 것이었다. 허름한 외관의 구내식당스러운 식당에 들어가자 급 고급진 인테리어의 내부가 펼쳐진다. 가이드님의 말에 따르면 최근 공산당 간부들의 부정부패가 문제가 되기 때문에 예전같으면 호텔 식당으로 갈 것을 공산당원 식당으로 가게 됐고, 같은 이유로 겉은 허름하고 안은 화려하게 꾸민 것이라고. 이유가 뭐던 간에 겉과 속이 너무 다르니 조금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쌓아왔던 음주에의 욕망을 한껏 풀었다. 가짜 걱정 하지 않고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장소에서 고급 바이주를 먹을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 하지만 술을 마실줄 안다고 했던게 잘못이었을까? 중국식 술 문화는 3잔을 원샷해야 한다며 폭풍 원샷을 권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고, 다행히 나는 폭풍같은 대학시절을 보내며 각종 과음 피하기 스킬을 익혔으므로 주는대로 다 받았다.(그리고 몰래 물잔에 뱉었지.) 한국에서 온 젊은 여자가 술을 피하지도 않고 다 받아마시고 중국어로 더듬더듬 감사의 말까지 전하니 그들도 흥이 났나보다. 좋은게 좋은거고, 모두가 행복하니 그걸로 됐다.


우리를 초대한 당서기도 기분이 좋았나보다. 꼭 보여주고 싶은 유적이 있다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더니 우리를 위해 특별히 문을 열라고 했단다. 밤에 멀리서 불빛을 비추면 뱀을 자르는 유방의 형태가 나타난다는 미스테리한 비석 유방참사비(刘邦斩蛇碑)이 있는 한흥원구(汉兴源景区)였다. 어둠 속에서 멀리 비석을 향해 빛을 비춰보니 사람 같은 형체가 보이긴 하는데- 신기한건 딱 거기까지. 오히려 재미있는건 이게 뱀을 자르는 모습이라 생각하는 이유였다. 

'유방이 뱀을 자른다'는 것은 한나라 고조 유방의 일화를 모르면 무슨 뜻인지 모를 테니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한고조 유방이 황제에 오르기 전 젊은 시절에는 말단 관리의 신분으로 현의 궂은 일을 도맡아서 하곤 했는데, 하루는 망탕산에서 죄수를 압송하는 일을 맡았다. 그런데 큰 뱀이 길을 가로 막으며 도통 비킬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에 화가 난 유방이 검을 빼들고 뱀을 토막내어 죽여버렸다. 그리고 밤이 되었는데 한 노파가 서럽게 울고 있는게 아닌가 - 사람들이 울고 있는 까닭을 묻자, "내 아들은 하얀 황제의 아들이고 뱀으로 변해 길을 가고 있었는데, 붉은 황제의 아들이 칼로 죽여버렸다."고 울며 대답했다는 것. 여기서 흰 뱀은 진나라의 황제를 말하고, 흰 뱀을 토막낸(=진나라를 정복) 사람이 유방이고 곧 붉은 황제의 아들이니 유방이 황제가 될 것을 예견하는 일이었다는 말이 된다. 야사이긴 하지만 유방이 왕이 된 이후 자기를 스스로 적제지자(赤帝之子,붉은 황제의 아들)라고 칭한 것을 떠올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유방이 황제에 오르고 나서 백성들에게 붉은색을 특권, 부, 대길, 이로움을 상징하는 색이라 인식시킨 것이 오늘날 중국인들이 붉은색을 길한 색으로 여기는 것의 시초가 됐다는 것도 -


| 망탕산한문화관광특구(芒砀山汉文化景区, Mang Dang Mountain HAN Culture Tourism Area)

-주소: 河南省永城市芒山镇

-홈페이지: http://www.mangshan.net

-입장료: 성인 CNY100, 어린이(1.2m~1.4m)·60세~69세 노인 CNY50, 어린이(1.2m미만)·70세 이상 노인·장애인 무료

-가이드: 팀당 CNY80, 영어 및 만다린

-절경구: 08:00-17:00 / 한흥원구: 여름 08:00-21:00, 겨울 08:00-20:30



안녕채영

Seoul / South Korea Travel blogger & Writer

    이미지 맵

    China/Henan_허난성 다른 글

    이전 글

    다음 글